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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옴니버스

'전두환'의 디즈니랜드 '하나회'

by peoplememe 2023.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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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놀이터, 비밀 사조직 '하나회'

전쟁 경험도 없는 팬대 군바리들이 지들끼리 꿍짝해서 구데타를 일으키고 

대한민국 전체를 망친 사건의 뿌리는 '하나회'

 

대한민국 군대, 나아가서 대한민국 국가 자체를 근본부터 흔들어 놓았던 비밀 사조직 하나회. 이들의 가입의식은 비밀리에 치러졌고, 서약을 위반할 때에는 인격말살까지도 감수한다는 배신방지 조항까지 만들어 조직폭력배와 다름없는 군부 내 패거리를 만들어냈다.

 

상하 관계는 '형님'...

이들운 고위 공직의 군바리들이였다.

 

박정희에게 깔롱대서 하나회를 인정받는 전두환 개객끼


드라마 제5공화국
전두광과 그 무리의 모습을 보면 조직 폭력배가 연상된다.

이들이 진짜 군인보다는 폭력배 무리에 불과하다는 연출 의도가 있으셨는지 궁금하다.

그들이 조폭은 아니겠죠. 

그 당시 엘리트들이고 훌륭한 나름대로 유능한 군인들이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자기들 사리사욕을 위해 조직을 만든 다음 이득이 되는 행동을 하기 위해 무엇이든 서슴지 않으면 그건 조폭 아닐까요.

 

 

대한민국은 우리꺼여
대한민국은 오늘부텀 내꺼여~

 

대한민국 육군 내에 있었던 비밀 사조직. 전두환과 노태우가 중심이 되어 그들의 육군사관학교 11기(51년 입학, 55년 임관) 동기들과 후배들을 구성원으로 하여 비밀리에 결성되었고, 친목회로 출발한 이 조직은 제3공화국 시기, 박정희 대통령의 은밀한 후원 속에 성장해 나갔다.

박정희 대통령은 하나회 출신들을 위주로 진급을 시켜 주었고, 전두환이 준장에 진급할 땐, 최고급 세단까지 하사했다. 육사 11기 준장 1차 진급자 4명이 전원 하나회였고, 2차 진급자 4명 중 2명이 하나회였다. 1~2차 장성 진급자 8명 중에 6명이 하나회였을 정도였다. 이처럼 주요 요직은 하나회가 접수하는 푸시를 받았고 제2공화국 시절부터 사실상 최고 권력 집회로 군림하며 요직을 회원끼리 세습해나가는 독차지까지 자행하며 군대뿐만 아니라 정계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뻗어나갔다.

10.26 사건으로 정국 혼란을 틈타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전두환이 정권을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흔히 말하는 신군부라고 불린다. 이렇게 대통령까지 배출해내고 제5공화국으로 정치 체계를 뒤집었을 정도였으니 한국 현대사에 있어 존재감은 어마어마했던 개씹 사조직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이런 x씹 대통령은 없다. (feat. 다소곳 깔롱대는 노태우)


민주화로 제6공화국이 출범한 직후에도 하나회원 당사자가 대통령이 된 노태우 정부까지 정권의 주요 세력으로 존속했다. 이후 쌍두마차 전두환과 노태우의 내분으로 하여금 세력이 약화되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통쾌한 숙청

하도 깔롱되는 하나회를 눈꼴 사나웠던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고 일주일 뒤에 주요 요직을 죄다 파멸시켰다.

초기에는 주요 대가리들만 숙청하고 지켜보았으나, 중간간부가 술처먹고 사고치고 하도 깔롱대서 하꼬새끼들까지 싸그리 다 말살시켰다. 하나회 숙청으로 김영삼 대총령은 지지율이 80%가 넘을 정도로 시원한 파멸 작업으로 인정받는다.

1993년 전격 숙청되어 사실상 해체되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된다.

 



현 대한민국 국군의 온갖 병폐와 출신 차별, 군대 비리를 넘어서 대한민국 사회외 이념을 뒤흔든, 어쩌면 대한민국이 사회주의 국가도 될뻔한 여러 병폐와 군대 문화를 뿌리내리게 한 최악의 사조직 단체 중 하나로 평가된다.

90년대 군복무를 했던 분들은 군대내 사조직 금지 조항이 아주 크다는 것을 기억할텐데 그게 하나회 때문이다.

 

육군사관학교 11기부터 36기까지의 하나회 회원 全 250명의 명단은 2005년 2월 동아일보의 자매지인 <신동아>에서 최초 공개되었다. 이 명단은 전술된 기존의 하나회 명단인 '백승도 명단(128명)'의 오류를 바로잡은 하나회 명단의 '완결판'이라 한다.

 

 

유념할 점은 하나회는 공식적인 직함이 아닌 사조직 일원이기에 회원이 공식적인 증표를 달거나 활동 내역을 기록으로 보존하고 있을리가 만무하여 아래 반론들처럼 회원들의 리스트를 확실하게 색출이 어렵다는 점이다.

 

 

'하나회'의 시작

전두환, 노태우가 포함된 육군사관학교 11기는 1951년 한국전쟁 중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읍에 육사가 개교되며 입학했다. 당시 가입교한 228명의 생도 중 경상남도 41명, 경상북도 29명 등 육사 인근 쪽 사람들이 다수이고, 기타 지역은 전라북도 27명을 제외하곤 10명 미만으로 이전의 군사영어학교 ~ 육사 10기에선 이북 출신이 다수인 것과는 인적 구성부터 차이가 크다. 

 

직업으로 보자면 전쟁상황이라 현역과 군속 113명, 학생 97명, 공무원 4명, 기타 14명이다. 이들은 1달간의 훈련을 마치고 200명이 1952년 1월 20일 정식으로 입학한다.

이들 11기는 가입교 시절부터 출신 지역별로 뭉쳤는데, 추워서 모포를 확보하기 위한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조차도 같은 지역끼리 보호해주었다고 한다. 처음에 같은 경북출신인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박병하, 박갑용, 남중수 등이 몰려 다니고, 이후 손영길, 최성택 등 경남 쪽 생도까지 가세했다.

 

오성회, 오성그룹
이 중에서 전두환, 노태우(전두환과 대구공립공업중학교 동기), 김복동(노태우의 경북고 1년 후배), 최성택, 박병하가 처음부터 의기투합한 '오인회'이다. 이 후 ' 오성(五星)그룹 '이 되었다. 별 성(星)자 돌림으로 이름을 짓자고 하여, 용성(勇星) 전두환, 관성(冠星) 노태우, 여성(黎星) 김복동, 혜성(慧星) 최성택, 웅성(雄星) 백운택 으로 정해졌다.

 

여기에 성(星) 앞에 붙는 호칭은 그들의 특징을 잘 살려 붙였는데 다음과 같았다.


용성 전두환 : 싸움을 엄청나게 잘해서 용맹하다 하여 용성. 전두환은 사실 그냥 학교에서 좀 나댄 정도다.
관성 노태우 : 주어진 임무 수행을 칼같이 처리하여 관성.
여성 김복동 : 공부를 매우 잘해서 여성. 실제로 하나회 회원 중 임관성적이 가장 좋은 13등이었다.
혜성 최성택 : 지혜롭고 슬기롭다 하여 혜성.
웅성 백운택 : 남자다운 기질이 강하고 호방하여 웅성.

 

 

 

결국 전두환은 노태우와 짜고 최대 라이벌인 손영길을 준장 시절인 73년 윤필용 사건을 통해 제거하며 하나회 내의 주도권을 장악한다. 김복동은 12.12에 반기를 들었다가 82년 육사 교장을 끝으로 예편하였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조직원들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이 시기 오성회는 훗날 범죄 조직으로서의 모습보다는 친목 단체의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당시를 노태우는 오성회가 공개적으로 어울려 다니면서 다른 생도들이 우러러보는 집단이었다고 주장한다.

 

역대 육군사관학교 졸업생 중 최악의 자질들이었다.

인성이나 행보는 둘째치더라도 다들 공부를 ㅈ라게 못했으며, 웃기게도 캡틴인 전두환이 제일 돌대가리였다.

실업계 출신인데 내신만 좋아서 입학한 기수 정도에 불과했다.

몸빵으로 전두환 처럼 돌대가리여도 장교가 가능했던 시절이라 무식하고 용감하기만 했던 것이다.

 

 

하나회의 규범. 깔롱놀이

하나, 국가와 군을 위해 충성을 다하라.
하나, 선후배와 동료들에 의해 합의된 명령에 복종한다.
하나, 회원 상호간에 경쟁하지 않는다.
하나, 의리와 맹세를 저버리면 인간적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을 각오한다.
한 단어로 야쿠자 그 자체로, 특히 마지막 조항은 이들이 비밀 조직임을 확실히 하는 것이었다.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정규 육사 출신을 매 기수별로 정원제를 유지하여 가입시키되, 기수당 2~300명 중 약 5% 수준인 10명. 최고 13명까지 하며 자격은 위관급 장교에서부터 주어진다.


가입에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동의가 필요하다. 

고위층으로부터 활동비를 지급받거나, 재벌로부터 자금을 수령한다.


회원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진급 및 보직 상의 특혜

하나회 가입은 군 내에서의 출세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스토킹에 가까운 설득과 강요로 가입시켰다.

선정 조건은 영남 지역 출신, 성적 우수, 정치색이었다.

대충 조건이 맞아 보이면 강제로 가입시켰다.

 

저 대머리 머리는 돌대가리인데 충성도 좋구만..합격!!

박정희의 친애

1961년 서울대학교 학생군사교육단 교관으로 근무 중이던 대위 전두환은 5.16 쿠데타가 일어나자, 박정희의 친위세력을 자처하면서 '육사 생도들의 쿠데타 지지 시가행진'을 조직하였고, 이 공로로 박정희의 비서관으로 보임되었다.

 

이 때문에 박정희가 군 수뇌부와는 별도로 군 내 자신의 친위세력을 심어둔다는 의미에서 하나회를 방조 혹은 적극적으로 육성했다. 실제 윤필용 사건 이전부터 박정희는 전두환, 손영길 등 육사 11기의 준장 진급식에 파티를 열어주고, 별도로 고급 승용차까지 하사하였다.

 

노태우, 김복동에게는 '하나회'의 최초 명칭인 일심회의 '일심(一心)'이라고 새겨진 지휘봉을 내려주었다. 이는 다른 장성들에게는 하지 않은 대단한 특혜였다. 하나회의 존재가 박정희에게 공식적으로 보고된 이후에도 전두환을 최고 요직 중 하나인 보안사령관에 임명하는 등 계속해서 신임을 보였다.

 

 

야전 지휘 경험 부족의 하꼬 장교들

캡틴은 전두환이는 제대로 된 전방부대에서의 근무 경력이 사실상 단 한개도 없다.

다른 하나회 핵심 멤버들도 비슷하다. 


이러한 야전 경험의 부재는 당시 전투병과 장교라면 의무적이었던 베트남 전쟁 파병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전방부대에서 다양한 훈련과 여러가지 상황을 직접 겪어봐야 경험이 쌓일 텐데 하나회 장교들은 이런 게 전혀 없었다. 후방 사령부에서 펜대만 굴리면서 야전부대 지휘에 관해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실전에 투입되니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당시 베트남 파견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면 1계급 진급과 무공훈장 수여가 관례였기에, 하나회 장교들은 뒤에서만 일하면서 자기 승진용으로 전쟁을 써먹기 바쁜 생 양아치 새끼들이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전투 실행력 자체가 없는 입터는 군인.

무능한 군 내의 민폐 집단.

노태우 정부 시절 1992년 지만원이 군부 내 사조직의 병폐를 적나라하게 비판한 칼럼이 한겨레신문에 기고되었다. 사실 지만원 본인이 육사 22기로 하나회의 위세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에 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상당히 쌓인 게 많았을 것이다.

12.12 군사반란 

이하의 하나회 구성원은 어디까지나 정규 육사로 일컫는 11기 이후로만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당시 국방부 군수 차관보 유학성 중장, 1군단장 황영시 중장, 수도군단장 차규헌 중장 등 11기 이전 출신 인사들은 "신군부이자 하나회의 후원자"라고 하면 맞지만, 하나회 회원은 아니다.

전투도 경험없고 겁도많으면서 불만은 졸 많던 하나회 전두환 개새는 11기 이전의 선배들이 요직에서 한자리 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무력 구데타를 일으킨다.

 

 

세상 이만한 지랄도 없다.

 

12.12 사태 당시 장군들의 현장 육성

 

 

당시 주동자 핵심 개새는 당연 전두환이랑 노태우

깔롱

 

국군보안사령관 소장 전두환
육사 11기. 하나회 회장이자 12.12 군사반란 주도자. 셀프로 중장, 대장 진급 후 예편하여 대한민국 제11, 12대 대통령 셀프 당선.

 

깔롱롱

 

제9보병사단장 소장 노태우
육사 11기. 12.12 군사반란이 끝나고 수도경비사령관과 국군보안사령관을 거쳤으며 대장 진급 후 예편하여 내무부 장관 등을 거쳐 전두환 이후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당선.

 

군사 발란의 성공으로 하나회 출신들은 군내 핵심 요직들을 독차지한 것은 물론이고, 군인들이 자주 기용되는 대통령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독점했으며, 군에서 전역한 뒤에도 장관, 국회의원, 공기업 사장 등 고위직을 1자리씩은 꿰차는 등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은 그야말로 하나회의 시대였다.

 

 

무식한 것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전두환의 대통령 임기 기간에는 너무나 많은 민주학생 운동과 불합리가 많아 따로 요약해야 할 정도다.

나중에 다뤄보겠다.

 

 

깔롱대던 지들끼리 처 싸우게 된다.

1988년 노태우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하나회는 분열되어 전두환계와 노태우계 간의 암투가 벌어졌다. 

12.12 군사반란 이후부터 이미 하나회의 2인자로 여겨졌던 노태우는 오랜 기간 동안 2인자로서의 설움을 견뎌야 했다. 권력의 특성상 2인자에게는 견제가 쏟아질 수밖에 없었지만 노태우는 이를 견디고 겉으로는 친구인 전두환에게 충성을 다했고, 전두환은 노태우의 충성과 우정을 확신하며 그에게 권력을 넘겼다.

 

노태우는 대통령에 취임한 후 국민들의 5공 청산 요구를 등에 업고 전두환계를 가차없이 숙청했다.

암투의 발단은 1987년 말 군 인사에서 시작되었다.

 

나 건들면 디져이.. 이 ㅆ벨노무 노태우..

 

전두환은 퇴임 즈음에 헌법을 고치면서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만들었고 그 의장으로서 노태우 위에서 상왕처럼 군림하는 것을 구상했다. 이를 위해 퇴임 직전인 1987년 12월, 전두환은 군 인사에서 군부 핵심 요직들에 자신의 직계 충복들을 깔아두었다. 정권을 이양하는 시기임에도 노골적으로 자신의 세력을 다지는 군 인사를 행하며 향후 자신의 의도를 내비친 것이다.

 

쉽게 말해 마음만 먹으면 또 다시 군대로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누가 봐도 정권을 넘겨주지만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날려버리려는 의도였다.

무식한 x끼들...

 

김영삼의 하나회 숙청

속으로 ‘웃기지 마라, 내가 대통령 하면서 그렇게 더럽게 안 한다, 왜 (군부와) 동거를 하느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김영삼, 2009년 SBS '한국 현대사 증언' 방송에서 하나회 숙청을 회상하며..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릴 수밖에 없다.

군부에서 "고려시대 무신정변이 왜 일어났는 줄 아는가?"라며 반발하는 발언이 나오자 김영삼이 보인 반응

 

김영삼의 숙군(肅軍) 작업은 그야말로 '김영삼답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김영삼의 다른 업적들과 행보가 유사했다. 

기존 행정조직이 아니라 측근들하고만 의논하며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다가, 결정적인 시점에서 깜짝쇼를 하듯이 터뜨리는 것이다.

 

 

올바른 길을 걸어온 대다수 군인에게 당연히 돌아가야 할 영예가 상처를 입었던 불행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 잘못된 것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군의 명예와 영광을 되찾아 주는 일에 앞장설 것을 여러분에게 다짐합니다. 1993년 3월 5일 육군사관학교 49기 졸업/임관식 연설 중

 

 

하나회 명단 살포 사건

시간은 2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김형선 특전사령관과 안병호 수방사령관이 전격 교체된 것과 같은 날인 4월 2일. 당시 교육사령부 지원처장을 맡고 있던 대령이던 백승도가 육사 20기(중장급)~36기(중령급) 하나회 125명의 명단을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군인 아파트에 뿌리는 일을 벌였고, 이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하나회의 깊은 뿌리가 제대로 알려졌다.

문서의 제목은 <육사 하나회 회원>이었으며 16절지 크기에, 앞서 김영삼 초 국방부 주차장에 뿌려진 명단과 같은 것이었다. 

 

군부의 반발과 최후 ( '사파리가든 회식 사건')

오랜 시절 잘 처먹고 잘 해먹던 하나회의 주요요직이 모가지가 잘리고 명부가 까발려진 후 군부에 남은 하나회 요직들은 술만 먹으면 지랄을 일삼게 된다.

하나회 1차 숙청이 진정 국면으로 들어간 1993년 7월 9일, 이양호 합참의장 취임 한달 기념으로 합참 장성들이 모인 회식 자리에서 하나회 소속인 합참 작전부장 이충석 소장(육사 21기)이 물컵으로 탁자를 몇 차례 내려치면서

 

"군을 이런 식으로 막 해도 돼? 선배들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게 뭐냔 말이야. 소신도 없고, 다 죽었어! 정부가 장군들을 함부로 대하니까 외부에서도 제멋대로 군을 매도하잖아! 이래도 되느냐 말이야!"

라는 불만 섞인 발언을 했고 회식 자리가 서둘러 마무리된 일이 있었다.

결국 이충석 소장은 술 취해 업혀 갔다.당시 사건을 보도한 KBS뉴스

 

김영삼은 이 사건을 하나회가 청산을 받아들이지 않고, 군 통수권자에게 저항한다고 여겼다.

일부러 내버려뒀던 일부 장성과 영관급 회원을 배려했으나 모조리 초토화시키고 개박살 배버리고 하나회는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이 후 세월은 흘러 청문회로 내란의 책임을 묻는다.

 

사이좋게 깜빵가던 "친구야~"로 유명 했던 사건...
밥은 뭐나오지..아 배고퐈~라고 말하는 노태우 깔롱

 

현재는 주요 인물인 전두환과 노태우 둘다 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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