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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프로필

카카오 브라이언 '김범수' (Kim Beom-su) 프로필

by peoplememe 2023.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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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포브스 기준. 한국 부자 순위 7위

 

카카오프렌즈 최고 인기캐릭터 라이언과 닮았다. 

라이언의 모델이 실제로 김범수 의장이다! 카카오는 수평적 기업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직원들끼리 별명(영어 이름)을 부르는데, 김범수 의장의 별명이 브라이언이다.

 

잡스처럼 입어봤어효.. 우후후

 

카카오 초대 총수

김범수 (金範洙) Kim Beom-su

이명 : 브라이언 김 (Brian Kim)
출생 : 1966년 3월 8일 (57세) 전라남도 담양군
거주지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산운동
국적 : 대한민국 
직업 : 기업인


현직 :

카카오 총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경기도 스타트업 캠퍼스 초대 총장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국립오페라단 이사장

 


학력
건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산업공학 / 석사)


병역 : 병특
가족
아버지 김진용, 어머니 한상분
2남 3녀 중 장남
배우자 형미선(1968년생, 1993년 2월 결혼)
아들 김상빈(1993년생)
딸 김예빈(1995년생)


재산 : 41억 달러 (한화 약 5조 4,300억원)

 

 

 

 

인간 김범수 이전에 기업인 김범수가 건너온 타임라인

한국의 IT 1.5세대 정도 되시겠다.

 

NHN 창업 (네이버+한게임 합병)

초창기 인터넷 검색포털 기업이 큰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네이버는 검색 엔진과 서버에 많은 투자가 필요했고, 그 투자금은 한게임에서 번 돈으로 메꿨다.

 

그러다 경영권 분쟁? 갈등이 생기고 김범수 의장은 회사를 나간다.

NHN은 이준호, 이해진 체재로 바뀜.

 

네이버와 한게임은 물적분할을 통해 네이버는 분당 정자동, 한게임은 판교사옥으로 나뉜다. 

이해진의 주식(네이버)과 이준호의 주식(한게임)을 스왑한다. 

고꾸라지는 한게임의 주식으로 이해진은 울고, 고공행진하는 네이버 주식으로 이준호는 웃고...

 

 

그러던 와중에 우리가 지금 없으면 안되는 카카오가 세상에 나오고 마구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에 아차 싶던 메신저 라인을 빠르게 만들었지만, 한국시장은 카카오가 먹고, 네이버는 일본과 대만을 정복한다.

 

 

아이유의 로엔 엔터테인먼트까지 먹은 카카오는 엄청난 적자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키우기 위해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고자 BTS의 하이브와 전쟁을 벌이다

결국 오늘 조사받으러 출두하셨다.

 

 

기업이 커지고 부자가 되면, 질투도 받고 미움도 받고 조사도 받는 법...

비록 문어발 확장과 증여 등의 안티가 많아졌지만,

일을 추진하는 리딩 능력과 미래를 내다보는 기업인으로서는 대단한 양반이다.

 

 

브라이언 김범수는 어떻게 자랐나. .

전라남도 담양에서 농사를 짓던 평범한 서민층 집안에서 2남 3녀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다섯 남매의 교육을 위해 무작정 서울로 이사왔다고 한다. 김범수는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자식들 교육을 위해서 서울로 올라왔지만 정작 김범수의 부모님은 한번도 뭘 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노는 것도 마음껏 놀고, 공부도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공부했다. 다만 '넌 잘하고 있다'며 항상 응원을 해줬다고. 훗날 김범수 본인은 그런 격려와 지지가 큰 힘이 됐다고 술회했다. 

 

김범수가 중학생 때 아버지가 정육 도매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작은 집을 장만하기도 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부도가 났고, 다섯 남매를 다 대학에 보낼 수는 없어서 결국 김범수 혼자만 대학에 가게 됐다. 그래서 재수를 할 때는 혈서까지 쓰면서 독하게 공부했다고 한다.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손가락을 베서 혈서를 쓰고 담배를 끊기 위해 낱개로 파는 담배 3개비를 사다 책상에 올려놓고 진짜 힘들 때만 피웠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상 금연에 성공했는지 1년 후에 2개비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재수 끝에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86학번)하고 과외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학교를 다녔다. 보통 가정이 어려우면 공부를 독하게 할 법도 한데, 힘들었던 재수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로 고스톱, 포커, 당구, 바둑에 빠졌다.

(바로 한게임을 탄생시킨 근본이다. 초창기 웹보드 게임포탈의 컨텐츠들이다)

그렇다고 학업을 놓았던 것은 아니고 유급 없이 4년 안에 학사, 2년 안에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1992년 석사를 졸업한 후 전문연구요원으로 삼성데이타시스템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컴퓨터 언어를 본격적으로 팠다. 그해 양식편집기 ‘폼 에디터’를 개발했고 1993년 호암미술관 소장품 화상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1996년에는 PC통신 유니텔을 개발해 유니텔 에뮬레이터 유니윈2.0, 유니윈98의 설계와 개발을 맡았다. 1998년 정식으로 연구소 생활을 시작한 그는 삼성SDS에서 평생 가는 동지들을 얻었다. 문태식 마음골프(현 카카오VX)대표, SDS 입사 선배이자 네이버컴과의 합병을 제의했던 김정호 전 NHN 글로벌 게임사업 총괄 등이 대표적이다.

 

 

전설의 시작

1990년대 말 PC방과 온라인 게임 열풍이 불자, 삼성SDS에 재직 중이던 1998년 6월 김범수는 현재 카카오 대표 남궁훈과 함께 한양대학교 앞에 '미션넘버원' 이라는 대형 PC방을 창업한다. 법인명은 미션엔터테인먼트.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인 데다 그는 한 자리에서 모든 컴퓨터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개업 6개월 만에 5천만 원을 벌 만큼PC방은 승승장구했고 PC방 운영을 아내에게 맡기고는 1998년 9월 삼성SDS를 나왔다. 김 의장은 그해 연말인 1998년 11월 강남구 삼성동에 한게임을 창업했다.

 

합병을 발표하는 김범수. 왼쪽은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이다.

 

김범수는 2000년 한게임을 삼성SDS 동기 이해진 사장의 네이버와 합병시키고 NHN 공동대표가 된다. 합병 직후 김범수는 한게임으로 일본에 진출하기로 결심했고 일본시장에서 3200만명의 회원을 확보하는 등 일본에서 가장 먼저 자리잡은, 성공한 한국형 포털이 되었다.

 

 

“세계 네티즌 15%가 회원 글로벌 韓게임 축배 든다” 이후 2004년 NHN 단독대표를 거친 이후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대표를 맡는다. 그러다 2007년 8월 대표직을 내던진다.

NHN에서 나올 때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닙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한게임재팬부터 꿈꾼 김범수의 '글로벌 항해' 콘텐츠 심장부 북미 노린다”

 

 

 

잡스의 생가 근처 팔로알토에 사시던 김범수

그 후, 김범수는 다 털고 가족이 있던 미국으로 떠났다. 자녀들과 놀아주고 학교 데려다주면서 1년을 보냈다. 그는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다시 귀국해 음악에 빠지고, 책에 빠졌다. 

 

김범수는 너무 외로워서 "1년만 휴학하고 한국서 놀자"고 미국에 있던 가족들을 설득했다. 당시에 큰 애는 고1, 둘째는 중3이었는데 '나도 재수했는데, 애들이 1년 정도 늦게 대학가면 뭐 어떤가' 싶어서 식구끼리 여행다니고, 당구치고, PC방에 다녔다고 한다. 

 

더 무서운 건 이때 애들한테 아무것도 못 하게 하고 강제로 놀게만 했다고 한다. 식구 중에 딸이 게임을 별로 못했는데, 아들과 게임 고수인 아내의 지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한다. 그렇게 넷이서 게임을 하다보면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PC방 주인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면 그게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김범수 의장의 미국 집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PC가 8대이고, 1대마다 게임이 하나씩 깔려 있었다.. 최상의 퍼포먼스를 위해서 ㅋㅋ


그렇게 가족과 놀기를 3년, iPhone이 출시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가족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카카오톡이 탄생한다. 본인이 미국에 있을 때 마침 아이폰이 출시되는 것을 보며 PC에서 모바일 시대로 옮겨갈 것을 짐작, 한창 준비하던 프로젝트를 무산시키고 위와 같은 서비스를 출시했다.



“TV에서 PC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오는 큰 흐름이 있었다. 거기서 스마트폰 시대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원론적 질문을 주고받았다. 결국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답을 얻게 됐고 전방위적으로 여러 앱을 출시한 뒤 어떤 게 성공하는지 지켜보려 했다. 딱 2개월 뒤 카카오톡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카카오톡에 올인했다.”

 


당시를 보면 매우 과감하고 급진적인 투자이고 사업이었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문자 메신저 또한 통신망 투자를 한 상태에서 수익원이 되는 것은 당연한데, 카카오톡은 그것을 무료로 해주었던 것.

사용자 입장에서는 문자 메신저가 공짜여서 좋기는 한데,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카오톡 입장에서는 매달 10억 원 이상의 서버 투자 비용이 계속 들어갔다. 네이버 합병으로 벌어들인 투자금이 없었다면,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사업이었다.

김범수는 카카오톡 초창기에 단 한푼의 수익도 없이 서버 투자로 매달 10억 원 이상씩 돈만 쓰고 있었다. 다만 SDS와 한게임 등을 통해 인터넷 사업을 영위해온 그간 경험에서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돈이 된다는 신념만을 믿고 지속적으로 투자금을 쏟아부었다. 

 

이후 김범수 개인 돈마저 고갈되고, 카카오톡 사용자들은 메신저 렉 걸린다고 아우성이 들리는 상황이 되고, 결국 중국 텐센트에서 투자금을 지원받아 지속적으로 투자를 넓힌다.

 

 

메신저로 수익창출이 되는 모델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다.

카카오톡이 전 세계에서 최초로 메신저로 수익이 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냈는데, 카카오 게임을 통해서 메신저 사업에서 수익 창출 모델을 최초로 제시하였다. 이후로는 선물하기 기능 등등. 이후 김범수의 전략대로 인터넷에서는 사람이 모이면 돈이 된다는 이야기는 정설로 법칙처럼 되어버렸다.

 

카카오톡의 성공 모델을 보고, 네이버 이해진은 일본과 동남아 국가들(태국, 인도네시아 등)에 라인을 기반으로 한 메신저를 재빨리 론칭했고, 중국은 QQ를, 전 세계에서 가장 발빠른 이스라엘 기업도 메신저 회사를 만들었으나, 페이스북이 빠르게 인수한다.

 


이후 2014년 다음과 합병한다. 정확히는 다음의 존재는 사라진다.

한때 그의 주 파트너가 경쟁사였던 네이버였음을 감안하면 합병이긴 해도 경쟁사와 인연을 맺은 것이 시대의 아이러니이다. 

카카오는 처음에는 무료 서비스라 게임 업체와의 연동에 주력해 수익을 냈지만, 이후 준비했던 유료 서비스들과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 은행 사업이 대대적으로 성과를 내면서 2019년, 자산총액 10조 이상의 대기업 기준을 만족하며 9년 만에 대기업이 되었다.

 


“삼성SDS를 뛰쳐나와 한게임을 만든 것, 한게임을 네이버와 합병시킨 것, 네이버를 떠나 미국으로 간 것, 모두 환경을 변화시킨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강제적으로 환경에 변화를 준 것이 내 성공의 비결이었습니다.”

 

솔직히 성공하면, 무슨 말을 해도 다 멋있다.

 

 

 

미국 원정 도박 의혹
2015년, 김범수가 2007년 1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최고급 호텔인 벨라지오의 카지노에서 5만 달러(약 5,800만원)를 가지고 도박을 했다는 미국 재무부 기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1회 평균 베팅 액수는 2,440달러(280만원) 정도였으며, 도박 이후 그는 하루도 되지 않는 사이 총 1만6,993달러(약 2,000만원)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

자녀 경영권 승계 의혹
20대 두 자녀에게 500억 원이 넘는 카카오 주식을 증여했는데 이 자녀들이 사실상 카카오를 지배하는 비상장 회사 케이큐브홀딩스에 다니는 걸로 확인됐다. 케이큐브홀딩스는 김범수 창업자가 100% 지분을 가진 곳이다. 이 회사를 자녀들이 물려받는다면 꼬리가 머리를 지배하는 이른바 '재벌식 승계'가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별다른 투자 활동을 벌이지 않고 있는 케이큐브홀딩스가 사실상 카카오의 지주사다.

2019년 말 기준 케이큐브홀딩스의 직원 수는 5명으로, 급여 지출은 약 14억 원이다.

 

 

카카오는 멜론을 1조 8700억 원에 인수했는데, 이는 과거 구글의 유튜브 인수 금액에 맞먹는 금액으로 너무 비싸다는 주위의 우려가 있었으나 김범수 의장이 밀어붙였다고 한다.

몇 년 후, 음원 서비스가 인공지능(AI) 생태계의 핵심 콘텐츠로 등장하자 결국 SK텔레콤 회장은 직원들에게 멜론을 매각한 것은 실수였다면서 음원 서비스 기업 Flo(플로)를 다시 만들어서 키우고 있으나 멜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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